한국 영화계의 커다란 화두 중 하나가 ‘다양성 영화’다.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예술성이 짙거나, 자주 시도되지 않는 장르, 실험적인 구성을 담은 작품이 많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치 기득권에 저항하듯 ‘영화의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어쩔 수 없이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저예산 영화의 실험성에 있어서 매우 관대한 편이다. 작품의 만듦새가 부족하더라도 응원이 쏟아진다. 

평단의 호평이 이어질지라도 실험성이 강한 영화는 대체로 흥행에 실패한다. 아무리 관록이 있고 흥행에 여러 번 성공한 감독이라도 대중은 실험적인 영화를 보려 하지 않는다. 평단은 오히려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한다. 잘하는 걸 했으면 충분히 흥행할 수 있는 재능을 썩혔다는 데서 온 반감 같다. 감독과 제작사, 배급사의 용단에는 눈을 감는다. 한국 영화계가 가진 모순으로 해석된다.

 

대표적인 예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이다. 먼저 ‘헤어질 결심’은 스릴러와 멜로가 뒤섞인 혼성 장르로, 영화 문법이 장면마다 삽입된 걸작이다. 비록 이야기가 복잡하게 흘러가고, 너무 잔잔한 진행 탓에 몰입이 어렵기도 하지만, 이른바 씨네필이라 하는 관객들은 해당 영화를 극찬한다. 

박찬욱 감독만의 독특한 미장센에 더불어, 독특한 시점샷이나 주인공의 관음적 성향을 유려하게 펼쳐낸 지점, 무엇이 사랑인지 어디까지 사랑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메시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려진 힌트, 영화적 쾌감이 느껴지는 부감 샷 등 감독의 날카로운 예술성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의 누적관객수는 약 155만명이다. 박찬욱 감독의 명성이나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이라는 걸출한 쾌거를 업고 받은 성적표라기엔 아쉬운 감이 있다. 해외판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진정 원했던 결과는 아닐 것이다. 

‘외계+인’은 그야말로 영화적 실험이다. SF와 사극, 케이퍼 무비, 로맨스가 골고루 섞인 이 영화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어떤 작품에서도 레퍼런스를 찾기 어려운 영화다. 수많은 배우가 캐릭터 열전을 펼치는 가운데서 현대와 고려를 오가는 동시에 외계인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담긴 ‘외계+인’은 단순한 평작은 아니다. 선뜻 받아들이기에 이질감이 짙을 뿐이다.

워낙 방대한 세계관 탓에 설명해야 할 것이 많아 루즈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영화사적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외계+인’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약 106만 관객 동원에 그쳤다. ‘외계+인’ 1부만 손익분기점이 700만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큰 실패다. 

 

‘천만 영화’를 두 번이나 성공하고, 모든 연출작에서 유의미한 흥행을 거둔 최 감독의 작품이란 점에서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최동훈 감독의 전작에 비해 호성적은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겠지만, 그 이상의 참담한 결과일 것이다.

이런 결과를 CJ ENM 내부에서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고 보긴 어렵다. 20년 넘게 영화를 투자배급해 온 회사인데 실험성이 강한 두 작품이 엄청난 흥행을 이끌 것이라 예단하진 않았을 것이다. 재능을 입증한 두 감독이기에 리스크를 안고 도전에 함께 한 것일 테다. 

성공하는 영화가 있으면 실패하는 영화도 있는 법이다. CJ는 예전부터 원금 손실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막대한 투자를 이뤄왔고, 이미경 회장은 감독과 배우를 물심양면 챙겨왔다. 전 세계적으로 각광 받은 ‘기생충’ 역시 매우 실험적인 영화에 가깝다. 이 영화를 투자한 회사도 CJ ENM이다. 

비록 두 영화는 흥행 실패라는 결과를 받았지만, 영화계가 이러한 실험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예산 영화에 독특한 아이디어는 필수적이지만, 블록버스터는 선택적이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영화는 대체로 대중이 좋아하는 방식을 따른다. 빠르고 재밌고, 적당히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억지스럽더라도 희망적인 엔딩을 띠는 구조다. 이처럼 짙은 오락성이 만듦새가 좋은 영화도 필요하지만, 영화계의 성장을 위해선 ‘헤어질 결심’과 ‘외계+인’ 같은 실험도 뒷받침돼야 한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영화계는 “새로운 영화를 만들자”는 캐치프라이즈를 걸고 예술성으로 단결했다. 창의적인 창작물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있었던 때다. 그 열망 속에서 기회를 잡은 감독이 박찬욱, 봉준호, 최동훈, 한재림, 류승완, 장준환, 김지운 등이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영화인들이 이때 함께 태동했다. 지금 문화강대국의 평판은 당시 영화인들의 노력을 거름으로 삼았다.

오랫동안 한국 영화계는 ‘양산형 영화’만 만든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포스터만 봐도 결말이 짐작되는 영화들이 즐비했다.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런 중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조금씩 기발한 아이디어가 가미된 작품이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여러 면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래도 유의미한 흔적이다. 

앞으로도 CJ ENM을 비롯한 국내 배급사의 도전은 이어져야 한다. 2000년대 초반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용솟음칠 때처럼 말이다. 비록 실패할지라도, 강한 결심으로 실험적인 소재에 에너지를 투입했으면 한다. 그 용단이 문화강대국으로 뻗어가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 피와 살이 될테니까 말이다.

사진=CJ ENM

함상범 기자 hsb@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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