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재료는 훌륭한데 그에 걸맞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예능, 특히 리얼리티 버라이어티에서 그 재료란 출연진이 5할이다. 소위 말하는 숨만 쉬어도 재미있는 사람들이 나오면 재미의 절반을 보장한다. 캐릭터까지 정해진 인물이라면 제작진이 할 일이 또 하나 줄어든다. 더불어 서로간의 앙상블까지 훌륭하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티빙 오리지널 ‘만찢남’은 그 절반을 채우고 시작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방송가는 물론이고 유튜브에서 재미가 검증된 인물들로 팀을 꾸렸다. 웹툰 작가 주호민, 이말년(침착맨), 기안84가 그 주인공이다. 이미 유튜브에서 자주 봤던 앙상블, 하여 차별 포인트로 주우재를 첨가했다. 웹툰의 열독자를 표방한 만큼 ‘성공한 덕후’의 캐릭터를 부여했다.

‘만찢남’이라는 이름에 맞춰 만화를 찢고 나온 작가들에게 ‘만화를 찢고 들어갔다’는 콘셉트를 잡았다. 네 명을 무인도에 표류시키고, 그 장소를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리는 웹툰의 세계로 재구성했다. 세계관을 창조하고 주인공들을 마음대로 움직였던 신격자들에게 반대의 상황을 강제하고 그 모습에서 재미를 찾겠다는 것, 분명 신선한 기획이었다.

그런데 멤버들 대신 예능의 재미마저 표류했다. ‘만찢남’의 시작은 몰래 카메라였다. 그간 많은 예능에서 지겹도록 봐왔던, 멤버들을 납치해 다른 장소에 끌고 간다는 구성이다. 식상한 건 맞지만, 나름 늘 웃음 사냥에 성공하는 악마의 방식이다. 제작발표회 때부터 해당 플롯을 대대적으로 내세웠는데, 뚜껑을 열고보니 그리 대단하진 않았다.

‘몰타’에 간다 하고 ‘몰카’를 찍었다는 아재 개그만 남겼을 뿐이다. 처음부터 몰타행을 믿지 않는 멤버도 있었고, 셋이 함께 하는 여행에 큰 호들갑도 없었다. 리무진으로 납치돼 무인도로 실려가는 와중에도 이제는 방송을 꽤 아는 기안84만 예의상 반응할 뿐이다. 심지어 주우재가 납치되는 과정은 통편집 수준이었다.

표류의 수준도 밋밋하다. 무인도라는데 의외로 여러가지가 구비됐다. 물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씻는 것도 가능하다. 당장 첫날 끼니는 주호민이 싸왔던 컵라면으로 해결한다. 불씨를 만든다며 고생하나 싶더니, 주변에서 성냥을 발견한다. 물을 끓일 냄비도 줍는다. 매점을 털어 적당한 가재도구도 준비한다. 편한 세상은 아니더라도, 살만한 세상이다.

방구석 모니터 앞에 앉혀만 놔도 웃긴 3인방이다. 그런데 미션을 한다면서 대화가 증발했다. 그림보다 입담에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육체 노동만 시켰다. 해가 지고나서야 나타났던 주우재의 합류신도 무미건조하게 지나갔다. 깜짝 등장이라는 말이 무안할 수준, 그럴 거면 차라리 대낮부터 함께 하는 것이 나았을 전개다.

기안84는 편할 수 있는 길을 돌아가는 재능을 발휘한다. 성냥을 거부하거나, 하루 종일 고생해서 얻은 비닐 쉼터를 “별을 보겠다”며 일부러 찢어버린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이말년과 주호민은 철부지 막내 동생 보듯 감내한다. 기안84의 엉뚱함이야 언제나와 같지만 무인도라는 설정 아래선 고구마 같을 행동이다. 출연진 역시 뭍과 섬에서 행동에 다름이 없으니 굳이 무인도까지 배 타고 나간 이유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어쩌면 방송 경력이 가장 많은 기안84의 큰 그림일 수도 있다. ‘만찢남’의 무인도가 너무나도 편했기에 일부러 에피소드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아직까진 주호민과 이말년의 인내심이 남아있지만, 이후 전개에 따라 ‘싸워서 다행이야’라는 아귀다툼 케미를 살릴 수도 있다. 게스트의 투입으로 또 다른 재미를 부여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굳이 무인도까지 찾아갔지만 지금까지는 일반 지방 촬영과 다를 것이 없다. 야심찼지만 심심해진 콘셉트에 프로그램의 재미와 시청자들의 관심만 표류 중이다. 지금은 '만찢남' 보다 그들의 개인 채널을 보는 것이 더 웃음 타율이 높을 수 있다. 과연 ‘무인도’라는 자신만의 차별점을 살려낼 수 있을 것인지 '만찢남'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티빙 '만찢남' 방송 캡처

 

권구현 기자 kkh9@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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